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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요그소토스의 아이들 2부 후일담

by 하랑백업 2023. 9. 26.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언니 몰래 돌을 던지자.

나는 강둑에 앉아 노래를 부르며 돌을 하나씩 던졌다. 신나고 활기찬 동요인데 어쩐지 내 입으로 나오는 노래는 힘이 없다. 좀 더 신나게 불러야 하는데, 그렇게 진절머리를 치고도 아직 미련이 남았던 걸까. 아니면 이제 안 둥그런 게 빛나도 싫은 걸까. 요즘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당연하지, 내 존재가 이치에 어긋난 걸.

우리는 절망했다.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자기 목숨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신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신이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 한들 언제 죽을지 알 수도 없었다. 약속의 그날이 언제인지 신은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삼천년 뒤에 죽을 수도 있었고, 바로 다음 날, 아니 바로 1초 뒤에 죽을 수도 있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차라리 스스로 죽어버리자는 결심이 서는 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

벨오빠가 제일 많이 노력한 모양이었다. 추측만 하는 이유는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앞에서 실험을 했고,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아무도 없는 데서 다양한 실험을 했다. 그러니 실제로 벨오빠가 제일 많이 노력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그 벨 오빠가 조금씩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기 시작했으니 제일 노력했을까 짐작할 뿐이었다. 범죄를 저지르는 것 자체는 별 생각 없다. 우린 신의 아이들이다. 신에게서 직접 확인받은, 신의 아이들이다. 목 뒤에 그 증거가 달군 쇠로 지진 것 마냥 박힌, 신의 아이들이다. 그깟 경범죄, 아니 설령 중범죄라 해도 신은 우리의 편이다. 제일 역겨운 게 그거였다. 설령 처형을 받을 일이라 한들 신은 우리의 편이었다.

무신론자인 롭오빠는 아예 언어를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벨오빠가 시끄러워진 만큼 롭오빠는 조용해졌다. 자주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머리 안에 어떤 사고가 펼쳐져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나도 머리가 좋다고 자부하는 편이지만 롭오빠를 따라갈 수는 없으니까. 나보다 머리가 나쁜 사람의 사고는 읽혀도 좋은 사람의 사고는 읽히지가 않는다. , 당연한 일인가! 게다가 나는 예전에도 신의 존재를 믿었다. 무신론자가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의 세계가 얼마나 흔들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삼일동안 아무 말도 안 하는 건 너무하지 않아?

그래서 나는 주로 언니와 함께 다녔다. 스톤들을 팔 때도 언니가 같이 있었다. 이제 반짝이는 돌은 지겨워! 그렇게 외쳤더니 언니가 그럼 같이 팔러 가자고 해주었다. 아직도 어린애 취급이냐고 삐죽이면 언니는 판 돈 떡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는 건데, 하고 대답했다. 그런 성격 아닌 거 빤히 아는 사람에게 너무 대충 둘러댄 변명 아닌가 싶었지만 같이 가면 심심하지 않고 나야 좋지 뭐. 내가 가지고 있던 스톤들은 고급이었기에 세월의 힘으로 더 윤이 났고 좋은 가격에 팔 수 있었다.

그 날 스톤을 팔아 받은 돈은 그 날 다 썼다. 언니와 함께 옷을 사고 맛난 밥을 먹고 간식도 잔뜩 먹고 오빠들 줄 맛난 간식도 사고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예쁘고 쓸모없는 것들을 가득 샀다. 어차피 아무데서나 자도 며칠을 굶어도 죽지 않는데, 돈을 모아서 무슨 소용이람! 룬스톤은 특히 팔아버리고 싶었으니까 너무너무 통쾌했다. 현재를 짚어 미래를 밝히는 돌인데 그게 나랑 대체 무슨 상관이람!

그렇다고 좌판도 포기했냐면 그건 아니다. 카드는 거부감이 들지 않으니까 괜찮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건 싫으니까. 배가 너무 고파도 아프도 아무데서나 자도 몸이 아프다. 그래서 돈은 번다. 내 점은 여전히 잘 맞는다. 신의 아이이기 때문이다. 다만 연애점은 조금 고난이다. 어느 커플이든 단점은 있기 마련인데 그걸 지나치지 않고 족족 짚어내버리는 거다. 좋을 게 없다. 점쟁이한테 정 떨어지게 만들 뿐이다. 그 대신 싫어하는 그 새끼가 어떻게 될까요, 올해 엿 같은 일은 언제 있을까요, 같은 점은 굉장히 잘 맞는다. 그래서 어느샌가부터 사람들은 나를 마녀라고 불렀다. 뭐 나쁜 일이 잘 맞는다면 그걸 피해갈 수 있으니까 여전히 손님은 꽤 있는 편이다. 다만 이제는 취급이 별로 좋지 않다. 세력가 집안의 따님 점을 봐줬다가 더 소문이 나쁘게 퍼져버렸으니, 이젠 슬슬 여기를 떠야할지도 모르겠네. 나 참, 그러게 누가 양다리를 걸친 채로 새 남자친구를 데려오래?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오빠 몰래 돌을 던지자.

나는 언니오빠들이 만들어준 스톤을 늘 갖고 있었다. 팔수는 없는 그냥 돌조각이지만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스톤을 강물에 하나씩 던지고 있었다. 언니오빠들이 싫어진 게 아니었다. 우리는 오직 우리만이 전체이고, 전체는 하나이니, 싫어질 리가 없었다. 싫어진다 한들 그게 대수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이것들도 무엇보다 소중한 내 보물이었다.

그러니까 예쁜 강물에 하나씩 던지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잡은 고기를 놓아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어떤 동물의 고기는 먹거나 팔지만 자기가 키운 동물은 곱게 장례를 지내주는 것처럼 나는 이 돌들을 하나씩 예쁘게 수장시켜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너희라도 죽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니? 신의 아이인 내게 가장 소중한 보물이니까, 가장 좋은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니 정중하게 죽여서 물에 묻어주는 것이다.

, 저기 마녀다!

진짜! 마녀가 있다!

, 저절로 얼굴이 찌그러졌다. 요즘 근방의 아이들은 나를 진짜 마녀로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를 괴롭히는 게 퍽 재미가 있는 모양인지 나를 보기만 하면 괴롭히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뭐, 별로 상관없나. 어차피 죽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아이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마지막까지 내 돌들을 수장시켜주었다. 마지막 한 조각까지 모두 던지고 나서 자리를 털고 막 일어났을 때였다. 묵직한 것이 내 팔을 강타했다. 어린애 주먹 만한 돌이었다.

괴롭혀도 말리기도 귀찮아 내버려두었는데, 감히, 신의 아이에게 돌을 던지다니. 크고 작은 돌들이 발 근처로 날아들었다. 키를 넘어가기도 하고 방향이 완전히 빗나가기도 하고 가끔은 제대로 맞기도 했다. 맨살에 맞으니 꽤 아픈걸.

마녀는 꺼져라!

우우! 마녀를 물리치자!

할 수 있다면 해 보려무나, 비천하고 더러운 아이들아! 있지, 나는 가장 고귀한 노예고 가장 비천한 귀족이란다. 너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사랑받고 있기 때문에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비천하단다! 감히 나에게 돌을 던지다니, 이렇게 불경한 일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돌이 이마에 떨어졌다. 몸이 휘청거렸다. 하지만 나는 쓰러지지 않았다. 아픈 건 이제 지겨울 정도로 익숙하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다 해보았다. 아픈 건 무엇이든, 전부, 다 해보았다. 그래서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다른 돌이 팔을 스치고 다리에 맞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서서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고 오른발을 반 발자국 뒤로 해서 무릎을 살짝 굽혀보았다. 어쩐지 돌 세례가 잠시 멈추었지만, 그래도 인사는 해야지. 감히 저를 죽을 위험해 처하게 해주시다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렇습니다. 그대들은 내게 지금 무례한 축복을 내리고 있어요.

그러니 부디, 안녕하세요! 저는 세계의 가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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