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de; Mythology 모서리의 공포 후일담
그럼 잘 가, 다음에 봐.
그렇게 인사하고서도 히카리는 코토미가 기숙사로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서야 돌아갔다.
‘사람이 참 나쁘지는 않은데 말이지….’
기숙사로 들어서다 뒤돌아보니 그대로 서서 손을 붕붕 흔드는 게 퍽 천연덕스러워 코토미는 그만 웃어버렸다. 역시 사람 외모라는 게 중요하긴 중요한 모양이었다. 같은 행동을 해도 기분이 풀리는 정도가 다르다. 잘 생기기는 잘 생겼다. 본인이 그렇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않았어도 조금 더 잘 해줄 수 있었을 텐데, 굳이 떠벌리고 다니니 어쩐지 말하면 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코토미는 한 번도 히카리에게 외모칭찬을 한 적이 없었다. 미안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저 정도 외모면 주위에서 마르고 닳도록 칭찬했을 테니 코토미까지 칭찬해줄 필요는 없어 보였다.
코토미에게 히카리는 엉뚱하지만 좋은 녀석이었다. 얼굴의 의미는 아니었다. 물론 얼굴도 매우 좋았지만, 병원 건물을 갖고 있는 의사부부의 딸에게 핫도그를 쏘는 애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물론 히카리 본인도 넉넉한 편이니 신경 쓰지 않는 것이겠지만, 아무리그래도 대놓고 아빠 돈을 탕진하겠다느니 하고 말하는 인성 파탄자에게도 스스럼없는 사람은 역시 흔치 않았다. 어쩌면 거꾸로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게 정상의 범주를 넘어섰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코토미는 자기에게 잘해주는 미남에게는 관대했다.
기숙사 계단을 오르는데 기분 좋은 피로가 서서히 몸에 내려앉았다. 머리나 몸을 혹사해서 오는 피로가 아니라, 시원하게 놀고 나면 잘 잘 수 있을 것 같은 나른한 피로감. 신기록 기념으로 저녁까지 먹고 오니 더더욱 나른했다. 원래 계획으로는 자기 전까지 내일 수업 전공서를 좀 보려고 했지만 코토미는 그 계획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돌발 쪽지시험이 내일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내일의 공부는 내일 하는 게 옳지 않은가. 유대계 신도 하루 만에 세상을 다 창조하지는 않았다.
“어라, 스와베쨩 아냐.”
“아, 안녕하세요, 선배.”
코토미는 속으로 욕을 했다. x같은 선배였다. 코토미의 자체등급으로는 5급수정도 되는 인물이었다. 다시 말해 코토미의 기준으로 짐승이하의 존재였다.
“놀고 오는 거야?”
“네.”
“애인이랑? 스와베쨩은 좋겠네~ 부모님 두 분 다 의사인데 남친도 저런 초특급미남이고!”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코토미는 얼굴표정으로 욕을 했다.
“아닙니다. 그냥 친구에요.”
“뭐? 거짓말~ 남자랑 단둘이 놀면서 친구라고? 야, 그냥 애인이라고 해! 애인 있는 걸 왜 숨겨? 왜, 남자가 빽이 별루야?”
표현 참 고상하셨다. 코토미는 대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애인이 있으면 숨길 필요 당연히 없죠. 그러니까 사실대로 말하는 겁니다. 애인 아니에요.”
“나 참… 진짜 애인 아냐? 아니면 나 좀 소개시켜주라! 진짜 미남이네…. 빽 없어두 문제없을 와꾸면 사귈 만하지. 음.”
이 순간, 코토미는 마음속으로 히카리에게 사과하면서 동시에 차마 사회적 지위를 위해 내뱉지 못하는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정말이지, 히카리는 사람은 좋은데 가끔 이렇게 귀찮은 일을 만들곤 했다. 그것도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안돼요.”
“왜? 역시 니 애인이라서?”
“아뇨, 걔가 게이라서요.”
“…….”
히카리는 어떻게 자길 설명하는지 몰랐지만 코토미는 이 말 한마디로 히카리를 향한 주위의 관심을 끊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잘생긴 게이친구를 둔 기분이 어떠냐 같은 정신 나간 질문을 받아야했지만 적어도 소개시켜달라는 성화를 견디는 것보다는 나았다. 본인에게 그리고 세상의 소수자들에게 죄송하기 짝이 없는 처사였지만 이 방법이 제일 깔끔했다. 해명해야 할 때가 오면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우기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정 안되면 다음 학기부터는 집에서 다니면 히카리가 기숙사 근처에 다시 올 일도 없을 것이다. 집에서 못 다닐 것도 없지만 매번 통학하는 시간도 아까워서 기숙사 신청을 한 것일 뿐이다.
“그, 그래? 그렇구나….”
“네. 그럼 선배 저는 내일 쪽지시험 준비하러 가볼게요.”
“그래. 아, 그래도 나중에 시간 나면 소개시켜줘! 나 게이친구 한 명쯤 갖고 싶었거든.”
“시간 나면요.”
더 이상 대답을 듣지 않고 코토미는 제 방으로 쏙 들어갔다. 게이친구가 갖고 싶었다니, 게이가 네년의 악세서리야? 코토미는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서 먼저 귀부터 씻었다. 더러운 개소리를 들으니 인간이 한층 더 싫어졌다.
“히카리 옆에 세워놓으면 여름철 음쓰같은 면상인 주제에.”
들이대긴 어디서 들이대. 카악 퉤- 하고 코토미는 세면대에 걸쭉하게 침까지 뱉고 나서야 조금 기분이 풀렸다. 안 그래도 생각해야 할 게 있는데 괜히 마주쳐서 기분만 더 더러워졌다.
코토미는 화장실에 들어간 김에 씻고, 아예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운 좋게 사람 수가 적어서 2인실을 혼자 쓰는 게 이럴 때는 큰 위로가 되었다. 아무 방해 받지 않고 생각하고 싶은데 룸메이트라도 있었다가는 잘 놀다왔냐 얼굴은 왜 그러냐 시험공부는 했냐 같은 영양가 없는 소리에나 대답해야 했을 테니까.
‘코드 미솔로지, 즉 암호는 신화….’
코토미는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신기록 갱신 기념으로 받은 키링을 손으로 빙빙 돌렸다. 진짜 은인가?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계속 손에 들고 있어도 간지럽지 않은 걸 보면 최소한 알레르기 방지 처리는 된 물건이다. 상당히 공을 들였다는 것이다. 건물 전체를 사용하는 걸 보면 투자금의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래, 첫 번째 문제는 그것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속 편한 놈이니 별 생각 없었겠지만, 그렇게 크고 인기 있는 방탈출카페 주위에 상점이 하나도 없다는 건 이상했다. 손님이 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번화한 곳에 위치를 정하기 마련인데 그러지 않았다. 건물 전체를 카페로 쓸 만큼 돈이 있는 사람이, 빈 상가만 남은 공간을 선택했다고? 아니 설령 전략적으로 그랬다 하더라도 그 주위에 밥집 하나 없는 것은 이상했다. 사업가란 돈냄새를 지독하게 잘 맡는 족속들이다. 당장 그 근처에 비슷한 방탈출카페를 지어 단지 자체를 테마화하거나, 방탈출을 즐기고 나온 사람들을 위한 밥집이나, 방탈출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면 으레 좋아할 추리물 전문 가게라거나 하는 것들이 줄줄이 들어서야 했을 텐데.
두 번째로는 카페테마와 방 테마의 괴리였다. 코드 미솔로지라고 하면 여러 신화의 이야기를 차용한 내용으로 꾸며야 할 텐데, 코토미는 모서리의 공포와 관련된 신화는 하나도 알지 못했다. 혹시 자신이 신화는 잘 몰라서 그런 걸까 싶어 온갖 키워드로 검색해보았지만 모서리와 공포가 연관된 신화는 찾지 못했다. 오히려 선단공포증이라 하면 신화보다도 의학에 훨씬 가까운 이야기 아닌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방은 신화모티프라기 보다는 스릴러나 SF에 훨씬 더 가까웠다. 시간여행자라던가, 시체로 분장한 마네킹이라던가. 그 마네킹을 뒤져야 열쇠가 나오던 걸 생각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코토미 자신이 아는 신화 모티프는 아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의심스러운 것은, 그래, 방 안에 있던 기괴하고 소름끼치는 책의 내용보다도 더 공포스러웠던 짐승의 소리…. 비록 그 소리는 처음 들어보았지만, 그 소리가 주는 형언할 수 없이 뒤틀린 감각은 분명 처음이 아니었다. 2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어제처럼 생생한 그 느낌. 불쾌하고 역겹고 기괴하고 소름끼치는, 그 모든 말을 모아도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히카리는 신기록 달성이라며 신나하기만 했지만, 코토미는 그 소리를 듣고부터 속으로 덜덜 떨었다. 뒤를 돌아보지 마, 앞만 보고 걸어가야 해. 빠르게, 하지만 ‘그것’들이 눈치 챌 정도로 빨라서는 안 된다. 이 소리는 뭐냐고 물었을 때, 소리를 신경 쓰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반사적으로 더욱 신경 쓰기 때문이었다. 마치 그 사람이 뒤를 돌아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뒤돌아보지 말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센터 시험 때 이후로 이렇게 온 힘을 다해 머리를 써본 건 처음이었다.
그것, 이 있다. 그 카페에는 그 세계와 관련된 무엇인가가 있다. 아주 오랜 시간을 각오한 일이었는데 뜻밖에도 예상보다 일찍 다시, 그것의 실마리와 마주쳤다. 코토미는 설령 학점이 구멍나 정학을 먹는 한이 있어도 그 카페의 단골이 되리라 결심했다. 목표는 일단 그 카페를 만든 사람과 만나는 것이다. 단골이 되면 언젠가 사장과도 마주치겠지. 아니면 직원에게 사장에 대해 자연스럽게 운을 띄워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히카리였다. 히카리와 다시 가느냐의 문제냐면 아니었다. 당연히 같이 갈 생각이 없었다. 히카리는 다시는 그 카페에 가지 않는 게 좋았다. 아무래도 눈치를 못 챈 모양이니 내내 그렇게 눈치 못 채는 게 좋았다. 코토미의 눈에 히카리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걸로 먹고 사는데 말이다. 아니, 직종이 위험한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누구든 모르는 편이 좋았다. 설령 그 세계에 대해 알고 있어도 애써 눈을 돌리고 사는 게 좋았다. 더군다나 미남은 희귀생물이니 보호하는 건 인간의 의무 아니겠는가.
‘나 같은 글러먹은 인간은 그걸 못하니까 이러고 사는 거지만….’
키링을 손가락에 걸고 이리저리 돌리던 코토미는 고민하다가 핸드폰 케이스에 있는 구멍에 키링을 걸었다. 카드지갑 겸용으로 만들어진 거라 간단한 열쇠를 걸 수 있는 구멍이 있었는데 열쇠를 쓸 일이 없으니 그냥 내버려두던 차였다. 열쇠 걸라고 만든 곳에 키링을 걸다니 뭔가 좀 웃기긴 했지만 일단은 잊어버리지 않는 용도로 걸어두기로 했다. 키링 자체에서는 괴상한 느낌은 들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안전할 것이었다. 오히려 머리가 조금 더 맑아지는 느낌이기도 했다. 물론 느낌일 뿐이겠지만.
어쩌면 생각 없이 지은 카페이름일지도 몰랐다. 짐승의 소리는 숨겨진 스피커에서 나는 걸지도 몰랐다. 그저 대부호가 심심풀이로 낙후된 지역에 사업 하나 벌여본 걸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논리적으로 옳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자신은 2년 전에 그냥 환각을 본 것이었다. 논리적으로는. 그 때에는 자신이 미친 게 아니라 말해줄 사람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다. 물론 코토미 자신이 선택한 결과였다. ‘그런 것’은 세상에 없고, 자신이 미친 걸까.
“어떨까, 이와세. 나는 지금 제정신일까?”
당연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코토미는 한 번 더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래도,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코토미는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한 번 더 말했다.
“…켄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코토미는 우는 대신 자기 뺨을 짝 소리 나게 치고선 손을 뻗어 방의 불을 껐다. 어둠은 무섭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해서, 해가 없기 때문에 생긴 어둠은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아늑하고 편안했다. 문득 예과 때 들었던 교양수업이 생각났다. 어둠은 공포인 동시에 성스러움이며 어머니이기도 하다고. 만물이 어둠에서 나와 어둠으로 사라진다. 그렇다면 모서리, 그 구석진 그늘에서 무언가 나오는 것도 영 근본 없는 가짜신화인 것만은 아닐 수도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비록 몰라도.
어떻게 하면 히카리를 그 카페에 가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아예 말을 않는 게 오히려 나을까, 이리저리 고민하던 코토미는 그대로 잠에 빠졌다. 어쩌면 히카리는 그대로 둬도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히카리는 그 이름대로 빛이니까, 어둠에 신경 쓸 필요가 없을지도 몰랐다. 모서리 구석구석까지 빛으로 채우면 은밀하고 조용한 ‘그것’은 사라져버리겠지. 가는 곳이 어디든 괜찮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이름대로 환하게 빛나는 녀석이니까.
날 갖고 노는 게 재미있어?
물론!
누가, 누가 감히, 이 스와베 코토미를.